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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비타(Evita)"중에서 Don't cry for me, Arzentina  
작성자 관리자1 (125.♡.68.58) 작성일 09-12-05 09:07 조회 2,186 댓글 0
 

에비타(Evita) Don't cry for me, Arzentina <-- 여기를 클릭하세요.

영화 -- 에비타 Evita (1996) 
15세 이상 / 128분 / 드라마,뮤지컬 / 미국
· 감독 알란 파커
· 출연 마돈나(에바 페론), 안토니오 반데라스(체), 조나단 프라이스(후안 페론), 지미 네일(아쿠스틴)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사생아 출신의 에바 마리아 두아르떼, 그녀는 나이트클럽의 댄서로 시작해서 라디오 성우를 거치며 자신을 천대해온 세상을 비웃어주기위하여 출세를 위한 야망을 키워나간다. 영화배우라는 꿈으로의 첫걸음을 내딛을 즈음인 1944년, 지진으로 인한 난민 구제모금 기관에서 에바는 노동부 장관인 후안 페론을 만나게 된다. 이 우연한 만남은 사랑으로 이어지고 에바의 운명을 단숨에 뒤바꾸어 버린다. 후안 페론과 에바의 결혼이 임박해올 무렵, 후안 페론의 정치적 역량이 확장되는 것에 위협을 느낀 권력 기관과 군인들은 후안 페론을 체포하게 되고, 페론의 석방운동은 1945년 9월 17일 민중혁명으로 이어져, 후안 페론이 대통령으로 추대되기에 이른다. 이로서 에바는 사생아에서 고귀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가 된 것이다. 스스로의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소외당하고 멸시받았던 약자였음을 잊을 수 없었던 에바는 권좌에 있으면서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서 기금을 모으고, 노동자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며 불평등을 척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에 감화된 수많은 국민들은 에바를 부통령 후보로 추대한다. 그러나 부통령 후보를 사임한 직후 에바 페론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암 말기 진단을 선고받는다. 1952년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퍼스트 레이디 에바 페론의 장례식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비탄어린 통곡 속에 장엄하게 치루어지고, 결코 죽음으로도 잊혀지지 않는 에비타의 신화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자리잡는다.

에바 페론이 사망한 지 21년 후인 1973년, 작사가 팀 라이스는 TV 다큐멘타리로 제작된 에바 페론의 신화적인 삶에 강렬한 영감을 얻게 된다. 그는 즉시 황금 콤비로 이미 유명해진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를 찾는다.

[지저스 크라이스타 슈퍼스타]를 끝낸 직후였던 로이드 웨버는 팀 라이스의 대본을 읽고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곧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이것이 전설적인 뮤지컬 [에비타]의 탄생이다.

1978년 6월 21일, 런던의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에서 초연된 뮤지컬 [에비타]는 영국은 물론이요,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적인 에비타 선풍을 불러일으킨다. 1976년 2장의 음반으로 이미 음악계의 호평을 받은 후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무대에 올려진 [에비타]는 뮤지컬의 국제화에 초석이 되었다는 찬사 속에 2천 여회의 연장공연을 갖는다.

뮤지컬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토니상에서 작품, 작곡, 작사, 감독 등 주요 7개 부문을 휩쓴 것을 비롯, 뉴욕 비평가 협회 특별상, 그리고 1980년에는 그래미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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